AI 시대일수록 특허의 가치는 더 올라가는가?
해외 VC는 이미 특허를 ‘법무비용’이 아니라 ‘혁신 운영체계’로 보기 시작했다.

해외 VC는 이미 특허를 ‘법무비용’이 아니라 ‘혁신 운영체계’로 보기 시작했다
최근 Index Ventures의 Ankar 투자 글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이 글이 특허를 단순한 권리화 절차나 사후 법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Index Ventures는 특허 지형(patent landscape)을 파악하는 능력을 발명자, R&D 조직, 그리고 C-suite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역량으로 설명합니다. 또한 AI가 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아이디어의 복제를 쉽게 만들수록, 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 깊고 방어력 있는 특허 포트폴리오라고 봅니다.

https://www.indexventures.com/perspectives/ankar-raises-20m-series-a-to-accelerate-and-protect-innov
이 시각은 스타트업, AC, VC 모두에게 꽤 중요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특허를 “출원할지 말지”, “변리사 비용이 얼마인지”, “투자 전에 몇 건 만들어 둘지” 정도로 좁게 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외 투자자들의 프레이밍은 조금 다릅니다. 특허는 더 이상 연구개발의 결과물을 뒤늦게 포장하는 절차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운영체계의 일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허는 ‘발명 후 절차’가 아니라, 발명 전·중·후를 관통하는 의사결정 도구
Index Ventures 글에 따르면 Ankar는 자신을 단순한 특허 등록 지원 툴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발견·검토·보호·사업화까지 이어지는 “innovation lifecycle” 전반의 운영 시스템으로 포지셔닝합니다. 투자 글과 회사 공식 발표, 그리고 리드 투자자인 Atomico의 글 모두 공통적으로 Ankar를 특허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하나의 워크플로우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설명합니다.

https://atomico.com/insights/our-investment-in-ankar-building-the-operating-system-for-innovation
특히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patent landscape를 맵핑한다”는 점입니다. 즉, 이미 존재하는 권리와 문헌을 기반으로 어디에 빈 공간이 있는지, 어떤 방향은 막혀 있는지, 어떤 아이디어는 사업화 가능성이 낮은지를 더 빠르게 판단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특허가 더 이상 “좋은 발명이 나온 다음 출원하는 단계”에만 머물지 않고, 애초에 무엇을 발명할 것인지 결정하는 단계부터 개입한다는 뜻입니다.
이 지점은 스타트업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기술개발 방향을 잘못 잡는 비용은, 출원비 몇백만 원보다 훨씬 큽니다. 선행기술과 권리 지형을 뒤늦게 확인해 개발 방향을 갈아엎는 일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따라서 특허를 비용 항목으로만 보면 놓치는 것이 많고, 반대로 이를 기술·제품·시장 전략을 조정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AI가 특허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 전략의 속도와 밀도를 높인다
Ankar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 회사는 1억 5천만 건 이상의 특허 출원과 2억 5천만 건 이상의 과학 문헌을 대상으로 신규성 및 선행기술 분석을 수행하고, 발명자 설명을 바탕으로 명세서 초안을 만들며, OA 대응 시 관련 이력과 분석을 한 화면에서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회사와 투자사들은 이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에서 등록까지의 시간을 크게 줄이고, 평균 40% 수준의 생산성 향상을 제공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용자의 96%가 동료에게 추천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서사를 “AI가 특허를 대신 써준다”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읽히는 메시지는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특허는 기술적 이해와 법적 구조화가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AI는 그 자체로 완결된 대체재라기보다 탐색·정리·초안화·비교·리비전의 속도를 올리는 보조 인프라로 기능합니다. Ankar 역시 자사 플랫폼을 “autopilot”이 아니라 “assistant”에 가깝게 설명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 포인트가 실무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특허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차이는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AI를 이용해 더 빠르게 더 많은 초안을 만드는 팀과 그 초안을 사업·기술·권리 전략으로 정제할 수 있는 팀의 차이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질 좋은 판단의 중요성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워크플로우에 있다
Ankar 투자 글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 중 하나는, 특허 업무의 병목을 AI 모델의 성능보다 업무 구조의 파편화에서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Index Ventures, Ankar, Atomico의 글은 모두 특허 실무가 여전히 Word 문서, 스프레드시트, 이메일, 구식 IP 시스템에 흩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특허 확보에는 최대 24개월이 걸릴 수 있고, 이 비효율이 발명자의 출원 의지를 떨어뜨린다고 설명합니다.
이 문제의식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실제로 특허 실무는 발명자 인터뷰, 발명신고서, 선행기술 검토, 청구항 설계, 내부 검토, 출원, OA 대응, 해외확장 판단까지 정보가 여러 사람과 여러 포맷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AI가 일부 문장을 잘 써준다고 해도 근본적인 생산성 개선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무상 제 의견으로는, 앞으로 IP 경쟁력의 핵심은 단건 출원 건수보다도 아이디어가 포착되고, 검토되고, 권리로 구조화되고, 이후 대응 정보까지 축적되는 흐름이 얼마나 일관되게 설계되어 있는지에 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말해, 좋은 특허팀은 “잘 쓰는 팀”이 아니라 “잘 흐르게 만드는 팀”이 될 것입니다.
스타트업·AC·VC가 읽어야 할 시사점
첫째, 스타트업은 특허를 더 이상 “투자받기 전에 한두 건 만들어 두는 서류”로 보면 안 됩니다. AI 시대에는 제품 개발도 빨라지고 모방도 빨라집니다. 이때 특허의 역할은 단순 보호를 넘어,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무엇은 굳이 비용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고르는 필터가 됩니다. 특허 전략이 없다는 것은 권리가 없다는 뜻만이 아니라, 기술개발의 우선순위 판단 체계가 약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AC와 VC는 특허를 “있다/없다”로만 체크하기보다, 그 회사가 특허를 어떤 워크플로우로 다루는지를 봐야 합니다. 발명 포착이 반복 가능한지, 선행기술 검토가 제품 의사결정에 연결되는지, 청구항 설계가 사업 포지션과 연결되는지, OA나 후속 출원이 데이터로 누적되는지 같은 질문이 훨씬 본질적일 수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포트폴리오의 개수보다 운영 방식의 성숙도가 향후 더 중요한 투자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법률·변리 실무 역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반복 업무를 줄이는 방향의 자동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다만 그럴수록 대체되기 어려운 역할은 더 분명해집니다. 어떤 발명을 어떤 범위로 권리화할지, 어떤 시점에 어느 국가로 확장할지, 공개·비공개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경쟁사 대비 어떤 claim architecture를 설계할지 같은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오히려 AI가 속도를 올릴수록, 전략을 설계하는 전문가의 개입 지점은 더 선명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 글이 던지는 메시지는 “특허가 중요하다”가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 시대일수록 특허는 더 중요해질 수 있고, 그 핵심은 문서 작성이 아니라 전략 워크플로우의 설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 VC가 이미 이 프레임으로 회사를 보고 투자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스타트업과 투자자에게도 꽤 시사적입니다.
앞으로 특허는 법무비용 항목이 아니라 혁신 운영체계의 일부로 보는 회사가 더 빨리 앞서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특허가 몇 건 있느냐”보다, 발명 전·중·후를 연결하는 IP 워크플로우를 갖고 있느냐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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